바야흐로 ‘컬래버레이션’의 시대다. 호텔과 다양한 이종산업과의 협업은 이제 호텔 경영의 필수요소로 자리 잡았고, 그 깊이와 범위는 나날이 확장되고 있다. 럭셔리 향수 브랜드부터 웰니스, 식음료, 엔터테인먼트에 이르기까지, 호텔들은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고객 경험을 혁신하고 매출 향상을 도모하며, 나아가 호텔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 호텔들은 단순한 숙박 시설을 넘어 종합적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최전선에 있는 국내 호텔들의 협업 사례를 통해, 호텔산업이 그리는 미래의 청사진을 살펴보자.
다양한 컬래버 사례들
웰니스, 아트, 테크놀로지와 호텔의 만남
호텔산업은 다양한 분야와의 혁신적인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고객 경험을 재정의하고 있다. 웰니스, 아트, 테크놀로지 등 다양한 영역과의 협업은 호텔을 단순한 숙박 시설에서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고객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며, 호텔산업의 미래를 새롭게 형성하고 있다.
특히 첨단 기술을 활용한 웰니스 서비스 혁신 또한 이뤄지고 있다. 워커힐 호텔앤리조트는 지난 4월 AI헬스케어 전문기업 웨이센(Waycen)및 알고케어(algocare)와의 협업을 통해 Ai헬스케어 파일럿 프로그램을 한 달간 운영했다. 웨이센과 알고케어는 글로벌 최고 권위의 가전·IT전시회인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4에 참가한 대한민국 대표 AI 헬스케어 기업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부문 혁신상을 연속 수상한 라이징 스타트업이다.
그간 워커힐은 프런트 무인 키오스크 설치, 로비 지역 길안내 로봇, 명월관 등 F&B 레스토랑에서의 서빙 로봇 운영, 객실 내 조명과 커튼, 온도 등을 원격 제어하는 SKT 누구(NUGU) 스피커 도입 등 다양한 고객 접점에서 호텔 이용의 편리함을 더하는 디지털화와 함께 미래 지향적 서비스를 갖추기 위한 AI 기반 요소를 강화해 왔다. 워커힐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데이터 거버넌스를 시작으로 생성형 AI 기술 도입과 최신 AI 서비스 브랜드와의 협업 등을 통해 다양한 부분에서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AI 기술 접목을 추진해갈 예정으로, 2026년부터는 AI 기반 개인 맞춤형 서비스(AI Personalization)의 기틀을 마련하고 고객의 호텔 이용을 더 즐겁고 편안하게 만드는 AI 호텔 비즈니스 모델을 공고히 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AI 헬스케어 파일럿 프로그램은 ‘AI 호텔’로의 도약을 위한 단계적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관계자는 “워커힐이 추진하는 AI 호텔화는 단순히 시스템의 효율화를 넘어 고객에게 더 즐겁고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이번 AI 헬스케어 파일럿 프로그램 시행은 그 시작점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많은 분들께서 AI가 설계하는 웰니스의 새로운 미래를 선뵐 것”이라 말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더 플라자는 호텔업계 최초 e스포츠와 협업한 사례로 이목을 끌었다.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LOL)’ 팬을 위한 두 번째 ‘와이낫 슈퍼 다이브 위드HLE(WHY NOT?! Super Dive with HLE)’ 패키지를 지난 5월 출시해, 상반기 패키지 매출의 82%를 차지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패키지는 △디럭스 객실, △2024 LoL챔피언스 코리아 서머 스플릿 경기 티켓2매, △더 플라자x HLE한정판 굿즈로 구성됐으며, 굿즈에 포함된 포토카드는 선수들의 미공개 화보 사진을 활용해 제작됐다. 또한 인생네컷은 더 플라자의 상징인 보라색을 배경으로 선수들의 중요 경기 순간을 생생하게 담았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 관계자는 “패키지 이용객의 64%는 외국인이었으며, 열에 아홉은 여성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내 e스포츠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면서, e스포츠 종주국인 한국에 방문해 경기를 관람하고 독특한 PC방 문화 등 한국의 게임 문화를 체험하려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다. 전 세계 숙박·교통·액티비티 예약 플랫폼 클룩(Klook) 또한 이런 추세에 발맞춰 ‘2024 발로란트 챔피언스 서울’ 결승 시리즈의 외국인 전용 티켓을 완판했으며,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모히건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는 '2024 발로란트 챔피언스 서울'의 결승시리즈 및 팬페스타를 개최하며 최초의 국제 e스포츠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한편 최근에는 고급 뷰티 브랜드와의 협업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특히 향수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은 호텔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강화하는 동시에, 고객들에게 독특하고 기억에 남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협업의 특별한 사례로, F&B 서비스와 향수 브랜드의 만남을 들 수 있다. 파크 하얏트 서울과 아르마니 뷰티의 컬래버레이션은 미각과 후각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럭셔리 경험을 창출했다. 아르마니 프리베 향수의 특징을 음식과 칵테일로 재해석한 이 프로젝트는, 호텔 F&B 서비스가 단순한 식음료 제공을 넘어 브랜드 경험의 장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르마니 프리베의 베티베 디베 향수에서 영감을 받아 24층에 위치한 ‘더 라운지’에서 선뵌 서머 애프터눈 티 세트는 베티베 디베 향수의 시원한 푸른색을 표현한 웰컴 칵테일로 시작해, 정상협 셰프의 세이버리 컬렉션과 이지명 셰프의 스위트 셀렉션으로 이어졌다. 특히 디저트 메뉴는 시트러스 플레이버와 이탈리아의 지중해 무드를 담아, 향수의 느낌을 미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 파크 하얏트 서울 x 아르마니 프리베 향수 ‘미식 컬래버레이션’
한편 2층의 ‘코너스톤’ 레스토랑에서 제공된 스페셜 디너 5코스는 아르마니 프리베 레 조(Les Eaux) 컬렉션의 다섯 가지 대표 향을 재해석했다. ‘피브완 수저우’ 향수의 투명한 연못에 떠 있는 장미 향은 국내산 농어 크루도로, ‘쟈스민 쿠사모노’ 향수의 핑크 페퍼 향은 스파게티 카치오 에 페페로 새롭게 재현됐다. 파크 하얏트 서울의 관계자는 “고객들에게 단순한 음식이 아닌 오감을 만족시키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며, “아르마니 프리베의 독특한 향을 음식과 음료에 접목시킴으로써, 시각, 미각, 후각을 아우르는 새로운 차원의 미식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컬래버레이션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트렌드 분석과 고객 피드백까지
이처럼 호텔산업에서 컬래버레이션은 새로운 가치 창출의 핵심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때문에 단순히 유명 브랜드와의 협업을 넘어, 체계적인 트렌드 분석과 고객 피드백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 접근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MZ세대의 다양한 니즈를 반영한 이색 협업부터 ESG를 고려한 지속가능한 파트너십까지, 컬래버레이션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다. 호텔은 이제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얻어가고 있다.
지난 9월 한국소비자포럼주최의 2024 올해의 브랜드 대상 ‘라이프스타일 호텔’ 부문에 6년 연속 선정된 글래드 호텔은 'Every GLAD Moment!'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최고의 가성비로 고객이 머무는 모든 시간과 공간이 기쁘고 만족스러운 호텔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고객 경험 확대(Deep CX)’의 중요성을 경영 화두로 꼽으며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며, 소비 트렌드에 발맞춰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와의 이색 컬래버를 통한 상품 출시 및 마케팅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23년 농심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선뵌 ‘해피맥스’(맥주+스낵) 패키지는 특히나 큰 인기를 끌었다. 글래드 호텔앤리조트의 이진솔 매니저는 “MZ세대가 전통 음식을 즐기는 ‘할매니얼’ 트렌드를 반영해 기획한 상품”이라고 설명하며, “호캉스하며 과자와 맥주를 즐기는 신선한 조합에 고객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이색 스낵을 활용한 ‘써머 쿨캉스’, ‘빵부장 IN 글래드’ 등 여러 상품을 추가 출시했다.”고 밝혔다.
이제 호텔업계에서 컬래버레이션은 이제 필수적인 전략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텔은 호텔 시설, 서비스와 함께 고객에게 기억에 남는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최근 호캉스(호텔+바캉스)에 대해 단순한 숙박의 의미를 넘어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고객들의 니즈(Needs)에 따라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한 이 매니저는 “고객 만족을 향상시키고 브랜드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라고 그 원인을 분석했다.
글래드 호텔에서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트렌드 중에서 주제를 정해 고객 설문 조사 및 분석 결과를 발표하는 ‘트렌드리포트’를 분기별로 진행하고 있다. 서베이를 통한 고객들의 다양한 의견과 경험을 토대로 상품을 기획하기도 하며, 객실 분야의 경우 글래드만의 감성과 어울리는 상품을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이 매니저는 전했다.
한편 이 매니저는 최근 지속가능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ESG 친환경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이 업계 트렌드로 작용했다고 답했다. 실제로 글래드 호텔은 환경의 지속가능성이나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협업 또한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비영리 공익법인 <아름다운가게>와 함께 글래드 호텔 전 지점 내 리사이클 기부함을 비치해 방문객, 투숙객 대상으로 ‘기부 어스, 글래드 어스(GIVE US, GLAD EARTH)’ 나눔 기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으며, 캠페인은 호텔 내 비치된 리사이클 기부함에 헌 옷, 잡화 등 물품 기부 동참을 격려하는 자원순환 캠페인으로 수거된 기부 물품은 아름다운가게 전 지점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판매 수익금은 어려운 이웃과 환경을 위한 지원사업에 사용되는데, 의류 1점의 기부가 온실가스 0.197kgCO2 저감 효과를 얻는다. 이는 종이컵 29개, 카페 컵 8개, 비닐봉투 4개를 사용하지 않은 효과와 동일한 수치다. 이 매니저는 캠페인을 통해 지난 상반기 1년 동안 1000여 점 이상을 기부했다고 알렸다.
한편 이 매니저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북캉스(북+호캉스)’ 관련 패키지 상품이 주목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에 글래드 호텔은 최근 다산북스와의 협업을 통해 ‘글래드 북스테이’ 패키지를 출시했다. 서울신라호텔 또한 북 큐레이션에 특화된 독립서점 ‘어쩌다 책방’과 협업해 북캉스 패키지 ‘블라인드 데이트 위드 어 북(Blind Date with a Book)’을 11월까지 선뵐 예정이다.
가장 기본적인, 그러나 가장 어려운
예술 컬래버레이션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Augé 1995)는 일시성과 획일성에 의해 특정지어진 장소를 ‘비장소(Non-places)’라고 명명하며, 호텔처럼 소비가 이뤄지는 공간을 사례로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호텔은 단순히 표준화된 공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호텔앤레스토랑> 9월호에서도 다뤘듯이, 숙박 시설을 넘어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나날이 진화해 가는 호텔에서 예술 작품은 호텔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며, 호텔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고객들에게 독특한 경험을 선사하는 주요 매개체가 된다. 많은 호텔들이 작가들과 협업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더욱 돋보이게 할 작품을 선뵈는 이유다.
하지만 호텔과 예술의 조화는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다. 예술의 본질적 가치를 유지하며 호텔의 기능적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므로 적절한 균형 잡기가 필요하다. 다양한 취향을 가진 고객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도 분명 협업의 큰 도전과제가 될 것이다.
롯데호텔 Interior Project Management Team 김담 대리는 “예술과의 컬래버레이션은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감정적 깊이를 더해주고, 여행자의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고 설명했다. 현재 롯데호텔 제주 야외정원인 ‘원생정원(原生庭園)’은 록 싱어송라이터 심규선과 손잡고 정원의 낮과 밤에 어울리는 22곡의 플레이리스트를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9월 25일 싱글 앨범 <난설헌 蘭雪軒> 발매로 많은 기대와 주목을 받은 싱어송라이터 심규선이 특정 공간을 위해 컬래버레이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연말까지 아침 9시와 오후 3시 30분, 저녁 6시와 9시 30분, 1일 총 4회 원생정원에 심규선의 음악이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김 대리는 “이번 컬래버레이션은 일시적인 쉼을 넘어서, 여행자에게 내면을 돌아보게 하고, 그들의 삶에 새로운 감동을 선사하는 소중한 순간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됐다.”고 밝혔다.
정원은 일반적으로 자연의 소리로 채워진 공간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나 근처에 설치된 분수대, 혹은 인공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스쳐 지나는 새소리가 정원이 담은 고유한 소리다. 이 공간에 처음 음악을 들인 것은 독일의 귀족들이었다. 다양한 음악회를 정원에서 열게 되며 바로크 독일 정원만의 음악문화가 꽃폈다. 심규선의 음악을 통해 롯데호텔 제주는 어떤 정원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싶었던 것일까? 김 대리는 “정원이 여행자에게 선사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경험은 내면을 치유하고, 사색할 기회를 주며, 여행을 통해 얻은 다양한 기억을 자신만의 존재와 연결하는 순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화려하게 돋보이거나 대단한 놀라움을 주는 공간이 아닌, 여행자의 마음을 조용히 다독이고 그들이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답했다.
심규선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원생정원에 특별한 의미를 더했다. 시와 운율을 담고 있는 심규선의 음악이 정원의 자연과 깊은 조화를 이뤄, 단순히 자연과의 교감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순간을 선사하는 공간으로 완성됐다. 이곳에서 방문객 개개인은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공간과 음악, 예술을 마주할 수 있다. “단순히 일회성 전시가 아닌, 기억 속에 남아 끊임없이 중첩되고 변화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말한 김 대리는 “심규선의 음악 역시 이러한 특성을 담고 있다. 명확한 결말을 지향하기보다, 감정적 여운과 변화하는 감각을 온유하고 섬세한 접근을 통해 느끼도록 해주기 때문에, ‘자연’이라는 주제를 통해 원생정원과 자연스럽게 융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령, 낮의 플레이리스트는 원생정원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심규선의 시와 운율을 빌려 여행자에게 전하는 순간으로 구성됐다. 아티스트의 음악을 통해 조용히 속삭이듯 전달되는 이 이야기에는 낮의 찬란함 속에서도 소멸과 재탄생을 암시하는 자연의 메시지가 담겼다. 심규선의 음악은 그 메시지를 감미로운 소리로 고요하게 다독이며 전한다.
밤의 플레이리스트는 보다 깊고 철학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음악들로 구성됐다. 고요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그 안에서 심규선의 음악은 공간과 깊은 대화를 가지며 서로의 예술과 정원의 기억을 펼쳐낸다. 밤의 정원에서 사람들은 스스로의 감정과 마주하고, 그 감정에 몰입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김 대리는 “밤의 플레이리스트는 감정의 깊이를 더욱 강조하면서, 공간의 어둠과 조화를 이루는 트랙들로 특별히 선곡했다.”고 귀띔했다.
이번 컬래버레이션은 “서로에 대한 우연한 발견과 마주침”이 포인트다. 특정 브랜드나 호텔의 이름이 아닌, 정원 자체가 지닌 미학과 철학, 그리고 심규선의 음악이 담고 있는 섬세한 운율과 감성에 집중하고자 했다는 것이 김 대리의 설명이다. “건축과 음악은 모두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예술적 영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 둘이 만나면 같은 시간 속에 하나의 감각이 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늘 새로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원생정원을 찾아오는 여행자들에게도 이런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호텔업계에서 예술과의 협업은 활발하게 이뤄지지만, 그 양상은 장르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미술 분야와의 협업은 활발한 반면, 음악과의 상호작용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실정이다. 미술 작품은 시각적으로 호텔의 분위기를 즉각적으로 변화시키며, 고객들에게 지속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반면, 음악은 청각적 요소로, 지속적인 재생이 오히려 고객의 휴식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리는 향후 지속적인 음악산업과의 협업에 있어, 격조 있는 표현과 예술적 감각을 살리는 데에 그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전했다. “호텔은 기본적으로 시각, 미각, 촉각을 자극하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지만, 청각이라는 감각은 그보다 더 인간의 내면에 다가서는 특별한 영역이다. 청각적 경험은 단순히 배경음악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이야기를 담아내고, 감정의 깊이를 더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설명한 김 대리는 이번 심규선 아티스트와 원생정원의 협업이 이러한 청각적 감각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며,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담아낸 원생정원에 심규선의 음악이 더해지며 하나의 완성된 예술이 됐다.”고 강조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이번 협업에서 중요한 부분은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심도 있는 공간 운영에 대한 고민이었다면서 “단순히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요소가 아닌, 공간과 음악이 서로 교감하며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창출하는 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방문객들이 경험하는 감정적 울림과 그들이 공간에서 찾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발견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설명하고 이런 깊이 있는 고민이 호텔 운영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지역과 상생하는 호텔
커뮤니티 중심으로 컬래버레이션의 새 물결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이하 라이즈 호텔)은 호텔업계에서 독특한 컬래버레이션 전략으로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2018년 5월 개관한 라이즈 호텔은 홍대라는 지역이 가진 활기차고 다이내믹한 에너지와 독특한 스트리트 컬쳐 씬(scene)을 아우르는 지역을 상징하는 새로운 랜드마크로 다시 자리매김하고자 음악, 아트, 패션 분야의 크리에이터, 브랜드, 패키지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라이즈 호텔만의 유니크한 문화를 창출해 나가고 있다. 특히 크리에이터 룸, 에디터 룸, 디렉터 룸, 프로듀서 스위트, 아티스트 스위트,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 스위트 등 6개 룸 타입을 갖춘 272개의 객실에는 예술적인 디자인과 김태윤, 권경환, 크리스 로, 김영나, 구본창, 등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채워져 있는데, 그중 4객실 뿐인 아티스트 스위트는 라이즈 호텔이 추구하는 협업을 가장 잘 보여준다.
아티스트 스위트 1501을 작업한 그래픽 아티스트 크리스 로는 노란색에 초점을 맞춘 큐레이팅을 통해, 객실에 머무는 이들로 하여금 따사로운 햇볕을 쬐는 듯한 기분을 선사하며, 호텔의 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공간적이고 감각적인 접근으로 보다 다층적이고 다차원적인 작품을 구현해 내 감상자의 시각과 촉각의 경계를 허문다. 한편 아티스트 스위트 1503는 파리와 홍콩에서 활동하는 사진 작가이자 예술가인 로랑 세그리셔에 의해 꾸며졌다. 3D 컴퓨터 렌더링을 통해 만들어 내는 현대화된 사진 기법을 선뵈며 인물 중심 촬영을 즐겨하는 로랑의 아티스트 스위트에는 콜라주 아티스트이자 페인팅 아트를 선뵈는 찰스 문카가 벽 전면에 입혀낸 페인팅 아트 또한 발견할 수 있다. 로랑은 라이즈에서 머무르며 홍대 거리와 로랑의 시선에서 바라본 서울의 모습과, 라이즈 크루의 모습을 촬영해 아티스트 스위트에 그 작업물을 담아냈다.
‘아티스트 스위트’는 라이즈 호텔의 아이덴티티와도 같다.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 관계자는 "작가와 손님의 거리를 없애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호텔 오픈 때부터 각 객실에 아티스트를 특별히 배정해 손님들이 작품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아트 스위트를 통해 한국의 특정 작가들과 계속 협업하려고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초기에는 해외 작가들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한국에 와서 작업한 이들이었다. 1502호의 경우 LA의 고비 갤러리와 협업해 한국 작가와 한국계 미국인 작가를 초대했다. 이를 통해 문화적 연결성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라이즈 호텔의 컬래버레이션은 전시 그 이상의 경험을 준다. 관계자는 “다른 호텔들은 주로 미술을 전시하는 식으로 가지만, 우리는 아티스트들에게 직접 스포트라이트를 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모든 객실이 아트 아이덴티티를 반영하지만, 아트 스위트는 특별히 작가들을 쇼케이스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라이즈 호텔 관계자는 “라이즈의 키 포인트는 오직 라이즈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최근 진행한 댄스 관련 행사는 처음에는 작은 규모로 시작했지만, 점차 확대돼 쇼케이스까지 개최했다. 또한 한글날에는 1층 로비에서 북페어를 열어 지역 독립 서점들과 협업하기도 했다.
라이즈 호텔의 파트너 선정 기준은 유연하다. 다만 호텔의 메시지와 맞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그는 “라이즈는 손님들이 라이즈를 재미있게 생각하고 떠날 때 ‘라이즈에서 이런 행사를 했다’, ‘이 작가의 아트피스가 특별했다.’고 기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라이즈 호텔은 올해 초부터 홍대 주변의 미용실, 네일숍, 식당 같은 로컬 비즈니스와 협력해, 호텔 손님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는 ‘네이버후드 프로젝트(Neighborhood Project)’를 이어가고 있다. 커뮤니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라이즈 호텔의 철학이 돋보이는 사례다.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인근 호텔에서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그만큼 관심을 받고 있다는 뜻”이라고 관계자는 긍정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홍대라는 지역 자체를 살리는 것”이라고 강조한 그는 “코로나19 시기에 많은 업체들이 폐업을 했고, 날씨에 따라 손님의 증감이 심한 편이기도 하다.”고 말하며 “이런 상황에서 호텔이 조금이라도 지역을 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커뮤니티에 대한 보답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이즈 호텔의 컬래버레이션 전략은 ‘트랜잭션 베이스’가 아니라 ‘아이디어 익스체인지’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다른 호텔과 차별화된다. 예를 들어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은 일품진로와의 룸 패키지 협업을 통해 한국문화를 독특하게 재해석하는 방식을 선뵀다. 호텔 관계자는 일반 진로 대신 일품진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제품이기 때문에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의 K-컬처를 떠올릴 때 흔히 연상되는 소주를 더 재미있게 풀어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이 패키지 출시 후 뉴욕 베이스 브랜드 키스(Kith)와 진로의 컬래버레이션 소식이 전해졌다는 것이다. 호텔 측은 이를 사전에 알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시의적절한 기획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한국의 문화적 아이콘을 재해석해 호텔만의 특별한 경험을 창출하는 것 또한 향후 컬래버레이션의 방향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상업적 협업을 넘어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호텔들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컬래버레이션이 앞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테크놀로지의 발전, 환경에 대한 관심 증가, 개인화된 경험에 대한 요구 등 다양한 사회적 트렌드와 맞물려, 종합적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이미’ 진화해 나가고 있다. 마르크 오제는 호텔을 정체성이 없는 균질한 공간으로 규정했지만, 오늘날의 호텔들은 이러한 개념을 뛰어넘는 독특한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테크놀로지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스마트 객실을 구현하고, 유명 아티스트나 디자이너와 협력해 독특한 인테리어를 선뵈며, 지역 상권이나 사회적기업과 연계해 지속가능한 삶의 가치관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호텔의 본질적 가치와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결국은 호텔의 기본인 '편안한 휴식'과 '최상의 서비스'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여기에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더하는 방식으로 컬래버레이션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호텔산업은 지금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종산업과의 경계를 허물고, 혁신적인 협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나가는 이 여정은 호텔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앞으로 어떤 형태의 컬래버레이션이 호텔산업을 새로운 높이로 끌어올릴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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